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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불패의 명장 이순신

    - 나라 위해 깊은 시름하던 이순신을 기리며

    편집국|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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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장군 영정.  
    ▲ (정형모 < 이순신 장군 영정 >, 1978년작, 한산도 충무사에 봉안 )

    임진왜란의 명장, 구국의 성웅(聖雄) 이순신의 전과는 실로 혁혁하여 세계 해전사상 청사에 빛나는 위업을 남겼다. 조선 수군의 대제독 이순신은 일생 동안 36번의 크고 작은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조선 수군의 피해는 총 선박 3척인데 비해 일본 수군은 선박 930여 척, 조선 수군은 인명 피해가 1,000여 명인데 비해 일본 수군은 126,000 여명에 달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의 기본에 충실하였다. 장군은 물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를 철저히 파악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지휘관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현장답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명량대첩의 싸움터인 울돌목도 오래 전에 직접 답사하여 위급한 상황에서 적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지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수군 중에는 어부들이 많았고, 이들은 자기들의 생업터인 남해안의 지형과 조류를 미세한 부분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어부들의 말도 귀담아 듣고 작전 수립에 활용하였다.

    일본 수군은 칼싸움에 능해 일단 배 위에서 싸우면 그들이 유리했다. 또한 일본 수군은 조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화포는 미약했다. 이러한 적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장군은 화포를 집중 발사해 적선의 접근을 막으면서 이를 격침시켰다.

    사생관이 확립된 군인

    명량해전에서 장군은 울돌목이라는 자연 조건을 최대한 활용했다.

    장군은 조선의 수군들에게 자연의 조화와 천험(天險)의 지형이라는 동맹군이 있음을 역설하고 일본 해군 섬멸 작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 싸움에서 일본은 불과 12척의 이순신 함대에 의하여 200여 척의 함대 중 무려 133척을 잃었다. 10배 이상의 적선을 맞아 진두에서 독전함으로써 믿어지지 않는 전과를 올린 것이다. 더욱이 불가사의한 것은 이 대해전에서 이순신 함대의 손실이 단 한 척도 없었다는 점이다. 명량해전이야말로 이순신 제독의 절묘한 용병술을 유감없이 발휘한 해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군인으로서의 사생관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적의 화살이나 총알에 맞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두려움을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한 번이라도 패배한다는 절망감은 갖지 않았다. 그리고 해전을 치르기 전에 부하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지략

    특히 사천해전을 보고한 장계에 따르면 해전에 참가하여 전사 또는 부상한 부하들의 포상을 건의하면서도 당신 자신에 대하여는 “적의 철환이 신의 왼편 어깨를 맞히고 등을 뚫었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고 하여 포상을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잠시도 쉴 생각을 하지 않고, 다음 날부터 계속된 당포ㆍ당항포 등 여러 해전을 지휘하였으니, 이순신의 모습을 지켜 본 군사들은 이순신의 참다운 희생 정신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의 청렴결백함, 겸비한 마음가짐, 선견지명과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뛰어난 정보 활용 능력과 전략, 철저한 기록 정신 등은 후세에 교훈하는 바가 자못 크다. 이처럼 이순신은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지략으로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 위대한 무장(武將)이었다.

    애국, 우국, 구국

    이순신의 생애는 ‘애국(愛國), 우국(憂國), 구국(救國)’의 삶으로 요약된다.

    장군은 한 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는 국토 사랑, 바다 사랑, 조선의 장수로서의 주인 의식이 확고했다. ‘나와 국토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것이 장군의 마음이었고, “임금과 신하가 같이 내 국토 안에서 죽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도피는 없다는 것이 충무공 정신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특히 전란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살길을 잃고 있을 때 “어적보민(禦敵保民)하는 데 힘써야 한다.”하여 적을 쳐부수는 일과 함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온 정성을 다하였다.

    장군은 언제 어디서나 큰 칼을 옆에 차고 나라를 위해 염려하고 노심초사했다. 자나 깨나 전쟁터에서 걱정으로 나날을 보낸 장군이 지은 시와 글들은 우국충정으로 가득차 있다.

    陳 中 吟 (진에서 읊다)
    蕭蕭風雨夜(비바람 부슬부슬 흩뿌리는 밤)
    耿耿不寐時(생각만 아물아물 잠 못 이루고)
    懷痛如催膽(쓸개가 찢어지는 듯 아픈 이 가슴)
    傷心似割肌(살을 에는 양 쓰라린 이 마음)

    山河猶帶慘(강산은 참혹한 모습 그대로이고)
    魚鳥亦吟悲(물고기와 새들도 슬피 우네)
    國有蒼黃勢(나라는 허둥지둥 어지럽건만)
    人無任轉危(바로잡아 세울 이 아무도 없네)

    구국의 성웅 이순신의 은혜와 희생을 기리며

    충무공은 신격화된 ‘불멸의 영웅’이 아니라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 자상한 인간애를 많이 보여주는 따뜻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근심거리도 많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아 눈물도 수없이 흘렸다. ‘난중일기’를 보면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역력히 읽을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조선은 당신의 어버이요 생명이며, 백성과 부하들은 애틋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이었다.

    조국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낸 이순신! 청사에 빛나는 조선 해군의 명장 이순신!

    일본 군사 교육가 겸 사상가 사토 데쓰타로는 '제국국방사론'에서 “동양에서는 한국 장수 이순신을, 서양에서는 영국 장수 넬슨을 들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조선에서 태어나 서양에 전해지지 않았지만 실로 훌륭한 해군 장수였다.”라고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은 ‘난세의 걸출한 영웅호걸’이 아니다. 인품이나 장수로서의 지휘 통솔력이나 지략에 있어서 세계 어떤 장수도 따를 수 없는 위인이다. 그분의 살신성인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없다. 후세인들은 잊고 살 때가 많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 그들을 위해 드려진 많은 이들의 거룩한 희생과 은혜 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온갖 모함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국난을 극복하고 겨레를 살리신 분, 자랑스런 우리의 제독이 이순신 장군이다.

    철학도 사명감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없는 수많은 정치인들, 민초들의 고통과 원성에 귀를 막고 욕망의 충견 노릇이나 하는 정치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국민이라면 이순신 장군의 삶을 교본(敎本)으로 삼고,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지켜온 선인들의 정신과 은혜를 깊이 되새겨야 하리라.

    ▲ 이순신 장군 영정. 
    ▲  (장우성 < 이순신 장군 영정 >. 1962년작. 정읍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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