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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교사 / 김희경은 감성 생태 동아리 ‘생동감’의 교육부장과 생태교사로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신기루나래 그림 작가로 활동 중이고, 안양교육희망네트워크 위원장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안양문화예술재단 뮤지컬 단원과 주인공으로 활동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김희경은 흰돌교회 집사로 섬기고 있으며, 전문적인 숲해설가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과정을 이수중이다
김희경 교사
얼마 전 ‘광합성에 대한 공식을 쉽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다 ‘이산화탄소의 100%가 다 산소로 바뀌는가?’가 궁금해졌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 과정에서 산소로 바꾸어 우리에게 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는가? 궁금했던 적이 있나? 난 이제야 그것이 궁금해졌다.

이리저리 책과 자료들을 찾다가 알게 된 사실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우림은 지구의 열대우림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지구 산소의 20%이상을 생성한다고 한다. 그럼 “20%는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 보았을 때, 광합성 화학식으로 보게 되면 나뭇잎 한 장에서 6개의 이산화탄소가 6개의 물과 만나는 과정에서 햇빛의 영향으로 1개의 포도당을 만들어 바로 녹말로 전환시켜 잎에 저장하고 그 과정 중 같이 만들어지는 산소 6개는 나무에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나뭇잎에 있는 기공을 통해 밖으로 배출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6개의 이산화탄소는 6개의 산소를 만든다는 걸 알 수 있기에 아마존 우림이 만드는 20%의 산소는 20%의 이산화탄소를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나머지 80%의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생태계적 장치는 물, 바다이다. 수면이 넓으면 넓을수록 이산화탄소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데, 바다는 지구 수면의 75%가량 차지하고 있어 가장 규모가 크고 흡수력이 대단하다⌟라고 한다(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20, 중).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지금보다 더 많이 흡수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라고 한다.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산성화되어지고, 그 안에 사는 해양생물들에게 영향을 주는데 특히, 조개나 갑각류 등 껍질이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해양생물들에게 필요한 영양분들을 줄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또한 플랑크톤이 사라지고 있는, 바다의 온도가 상승하는 이유이기도 한다고 한다. 플랑크톤이 죽고, 갑각류가 사라지면 먹이사슬은 무너지고 나아가 사람들에게까지 아주 무서운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니 그리되어지고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난 이런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사는 사람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산화탄소가 우리에게 기후위기라는 말 속에 포함이 되어 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바로 느낄 수 있는, 알 수 있는 나의 말과 행동이 산소로 바뀐 이산화탄소라면, 눈에 보이지도 바로 알 수도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나만의 표현이 누군가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은 80%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이지 아니할까? 그 이산화탄소가 산성화되어 기후위기 속에 큰 역할을 하고 있듯,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고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나의 80%의 영향이 이 사회 속에 녹아나 청소년 자살률 1위, 탈 한국 등의 무서운 말속에 일조하지 아니했을까? 그럼 난 그 80%를 어떤 방법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며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는 인생인가? 아니면 주변과 환경을 건강하고 청정하게 만드는 삶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꿈도 없이 비전도 부재한 상태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삶을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출세를 위한 강요된 꿈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꿈이 뭐니?" 라는 질문은 나의 생각을 가두는 질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나 또한 이런 질문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나와 같이 생각을 가두라 했던 것 같다. 이 질문을 받고 대답을 생각하는 동안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은 정말 나의 꿈이 궁금한가?’ 그 이유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시에, 이 질문을 나에게 한 그 사람은 나의 꿈을 물어보았지만, 내가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지려 하는지 궁금해 한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과 직업을 동일시 해야함을 나도 모르게 언제가 부터 나에게 강요를 했고, 그 질문을 나에게 한 사람을 위한 답을 찾으려 애를 썼다.

꿈=직업?

우린 당연한 듯 꿈을 물어보며 직업을 말하라 유도하고, 그 직업도 급을 나누어 평가를 한다. 급을 나누는 비교 속에 자연스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기준이 정해지고, 스스로의 신념과 철학이 담김 직업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시켜 버린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철학과 어떠한 신념도 없이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자신의 직업을 말하기 꺼려한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즐겁지 않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우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긍정적인 영향이 많을까? 부정적인 영향이 많을까?

꿈에는 한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들어가는 게 꿈이고, 직장을 가지는 게 꿈이고,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 된다면 그 다음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꿈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희망과 이상이란 말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살아가야 함을 제시하는 단어라 생각을 한다. 그래서 꿈은 직업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더 맞을 듯하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 하신다. 그 사명을 받고 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을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자신이 어디에서 살고 있고,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옆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때론 뒤도 돌아보면서 더 넓은 시야와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친구보다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상위권에 들어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성공하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참아내고 앞만 봐야 함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라 말할 것이다. 그러기에 꿈이다. 나의 꿈은 이 마음을 전하고 그리 살 수 있게 돕는 어른이 되고 싶다. 사회와 교육제도가 변하지 아니하면 어렵다 말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렵다 포기한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언제나 1위가 될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살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다. 한국에 살아도 벗어나고 싶어 탈 한국을 더욱 외치면서 자신의 불행을 곱씹으며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완벽할 수 없기에 기도한다.

“조금이라도 그러할 수 있길, 조금이라도 더 나를 잘 다스릴 수 있길, 조금이라도 내 마음이 전해지길, 조금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줄 수 있길, 조금이라도 ‘그래도 괜찮아!’ 말해 줄 수 있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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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1-22 22: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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