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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 전하는 성탄절 - 마음이 정화된 사람만이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 기사등록 2020-12-18 21: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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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환)
기독교방송 발행인/대표.
한국환경방송 발행인/대표.
사)한국신문방송협회 대표회장
사)한국환경운동시민연합 이사장.
한창환 이사장.

모두가 힘든 성탄의 계절,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했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도 울린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계는 좀처럼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을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성탄절의 뜻을 되새기며, 정화된 마음으로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려야 한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즉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가 주었다.



하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과 계약을 맺었다. 자유인은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있지만, 노예로 산 사람은 자유, 정의,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없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은 성숙한 사람을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미성숙한 이들이 인간사회를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 이 땅에 평화 정착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과 종교인, 권력을 가진 관료, 이들과 악어와 악어새가 되어버린 언론인들에게 정의로 오신 메시아가 필요하겠는가. 이들에게는 이들이 그토록 찬양한 파쇼정권이 필요하다. 이들은 강압적으로 억눌러야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여러 독재정권 아래서 뼈저리게 느꼈다.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과 종교인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은 자유인으로서의 자유를 저버렸다. 그래서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인 이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죄를 지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사랑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았다. 결국 목자 잃은 양떼가 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운동을 벌였다.



예수의 탄생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평화의 소식’을 전해 줄 것으로 소망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과 항상 죽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 보다 낳은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이주민,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약소국가 국민들에게 기쁘고 복된 소식이다.



성탄절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말라



아기 예수는 가장 미천한 마굿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자기 안에 갇힌 욕심 많은 사람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리를 모두 차지했기 때문에 아기 예수는 짐승 곁에서 태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정·지위·소유를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기 예수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 한국교회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닌지. 참담하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예수님의 평화를 외쳤다면,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 죄인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이들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다. 성탄의 계절, 12월이 쓸쓸한 이유이다.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는 가진자와 권력자, 강대국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거짓된 평화이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렸다.



사실 한국교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불의한 정권의 충견노릇을 자처했다.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천왕을 섬기는 일본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잊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 큰 죄인이 되었고,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와 교인은 강대국 권력을 숭상하며, 민족의 아픔을 몰각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은 화려하고 요란한 것이 아니다. 초라하고 조용하게 박해를 받는다. 성탄의 계절, 12월에 술과 환락 속에서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성탄절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렇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50%의 국민은 생계곤란을 겪고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국민은 술과 환락으로 예수의 탄생을 모독하고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겸손이 바로 힘이고 권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탄절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다리고, 보내는 것은 한마디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격에 전혀 맞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결과,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 또한 퇴색되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술과 환락에 빠져들었고, 혼란과 고통 속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고통은 더해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조용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삶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이웃과 나누며, 고통스러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서로를 축복해 주는 성탄절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신 메시아, 현존하는 메시아는 장차 종말(재림)에 오실 메시아와 연속되어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고 있다. 상대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됐다. 그러면서 자신은 목사이고, 장로라고 말한다. 자신의 밑에 있던 여자직원을 농락하고서도 양의 가면을 쓰고 연합운동의 현장에 나와 아무렇지 않게 연합사업에 참여한다.



자신들이 교리적으로 이단성과 깊숙이 관여되어 있으면서, 참 신앙인의 가면을 쓰고 상대를 음해한다. 이들이 바로 목사이고, 장로이다. 한국교회를 정화하겠다고 나선 언론인이다. 이들이 있는 한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깊이는 깊어만 간다. 마음이 정화된 사람만이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문제된 사람들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목한 교단, 교회, 인물들과 관련된 정치꾼들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연합사업의 현장은 분열과 갈등을 치유 할 수 없다.



양의 탈을 쓰고 분열의 중심에 선 교계 지도자.



오늘 한국교회는 저마다 이름을 빛내는데 안간힘을 쓴다. 자신이 힘 있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 모두가 곤궁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목사들은 보수연합기관 통합을 둘러싸고 돈부터 계산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가 아니다. 교회가 힘이 있으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한다. 나약 할 때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을 발휘 할 수 있다. 교회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나약 할 때 세상에서 소금의 맛을, 빛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자. 겸손이 바로 힘이고, 권력이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행동으로 옮긴다.



때문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인이어야 한다. 자유인은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성서는 노예로 산 사람을 자유와 정의, 사랑으로 통치할 수 없어서, 율법을 주었다. 세상은 자랑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사람이 있다. 자식도 자랑스러운 자식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자식이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데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바로 하나님의 참사랑이다.



참사랑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참사랑은 용광로를 녹일 수 있다. 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최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곤궁한 가운데 있는 국민을 위로하고,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것은 교회의 몫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 전하는 성탄절



예수님은 하루 벌어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자, 불구자들과 함께 뒹굴고, 밥상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에 짐이 되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는다. 메시아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목회자와 교인, 교회에 짐이 되고 있다.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보호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웃을 감쌌다.



우리는 70년동안 북한동포를 증오하며 살아왔다. 증오와 원한으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적인 민족통일,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동포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2021년도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데 있다. 말로만이 아니라,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노동현장서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조국을 떠나 타국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민에게, 이웃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외된 사람에게, 분단의 아픔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과거 이른 새벽 청소하러 나왔던 청소부가 자동차에 치어 숨졌다는 보도. 남편대신 청소하러 나왔던 청소부의 부인, 형을 대신해서 청소하러 나왔던 청소부의 동생이 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보도를 보고, 아무 느낌이 없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죽은 세상이며, 모두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정 없는 삭막한 세상이다. 청소부들의 성실한 삶은 모든 사람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또한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우편배달부의 죽음, 택배기사의 죽음,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감정이 굳어버린 오늘 사회를 그대로 말해준다. 언제 교회가 이들의 맑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번 해 주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쟁에 휩싸여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면, 우리 세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국민들에게 봉사했다면, 나라는 매우 행복해졌을 것이다. 직장 상사들이 부하직원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정의와 공의가 넘쳐흐르는 건강한 사회로 발전했을 것이다.



대형 교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남는 예산을 이들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줄 것이다. 이들의 삶은 순전히 남을 위한 삶이었다. 우리에게 생명의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하는 농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높은 아파트를 오르내리는 택배기사, 우리의 입을 옷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은 정쟁과 다툼을 벌이는 정치인과 목회자보다 거룩하다. 돈과 권력에 붙어 교회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언론인보다 정직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들은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도 천대를 받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최저임금만 받고 일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자이다. 2020년 성탄절을 맞는 우리 모두는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평화(샬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고난당하는 사람과 굶주린 사람, 소외된 사람의 손을 붙잡지 않고서는 성탄의 계절에 그리스도를 맞을 자격이 없다. 이제 우리는 정쟁만 일삼으면서 국민들에게 피곤함만 주는 정치인, 분열과 갈등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교회지도자들을 향해, 정의와 사랑을 받아드리라고 촉구하자. 불의와 거짓을 일삼는 권력에 항거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자.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며, 그의 제자된 그리스도인들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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