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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는 제임스 전. [사진 서울발레시어터]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미국 줄리아드대 출신의 ‘엘리트’ 발레리노다. 하지만 누구나 발레를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예술이 사회를 아름답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은 무대만이 아니라 삶의 곳곳에 있습니다.”

 제임스 전(55)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가는 “예술은 인간 정신에 음식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음식을 먹듯, 누구나 예술을 즐겨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에 따르면, 발레는 부자만 즐기는 예술이 아니고 팔·다리 긴 미남·미녀만 할 수 있는 무용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을 몸으로 표현하는 게 춤입니다. 발레도 마찬가지에요. 얼굴 크고 팔·다리 짧아도 누구나 할 수 있죠. 무용수가 다 똑같으면 도리어 재미없잖아요.”

“남과 똑같이 하기 싫다”=그는 열아홉 살에 발레를 시작했다. 프로 발레리노가 되기엔 늦은 나이였다. “캘리포니아 디엔자 칼리지 1학년 때 학교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연극을 하려면 무용을 배워야 한다더라고요. 현대무용이나 재즈는 너무 어려워보였고, 발레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 틀어놓고 부드럽게 움직여 쉽겠다 싶어 시작했죠.”

 그는 열두 살에 이민 간 미국 교민 1.5세다. 록 음악에 빠져 살던 사춘기를 지나 회계학 전공으로 막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다. 학교 근처 발레 학원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는 발레에 소질이 있었다. 1년 반이 지나자 영국 로열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인 학원 교사가 “더 가르칠 게 없다”고 했다. 20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갔다. 햄버거집·이탈리아 음식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발레 학원에 다녔고, 82년 줄리아드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줄리아드에서 줄곧 강조한 게 ‘너는 특별하다’는 거였어요. 특별한 내가 남과 똑같이 흉내만 내며 살 순 없었죠. 95년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한 것도 창작 발레를 하기 위해서였어요. 세상이 변하면 춤도 변해야지요. ‘백조의 호수’ 따라하기만 하면 로보트 아닌가요?”

 미국·유럽 등의 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87년 유니버설발레단 객원무용수로 귀국했다. 잠깐 머물며 돈도 벌고 친척도 만날 요량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니버설 발레단 주역발레리나였던 아내(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를 만나 89년 결혼했고, 영구 귀국으로 이어졌다.

 개인이 발레단을 운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길이었다. 스무 명 남짓 단원들 월급 주다 보면 계속 적자였다. 창단 2년 만에 서울 광장동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2003년 서울발레시어터가 과천시민회관 상주단체가 되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지금까지 전막 20여 편, 소품 80∼90편의 창작 발레를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15년 동안 살려고만 뛰어다녔어요. 창단 15주년 이후부터는 발레단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했지요.”

 “희망을 주는 발레”=그가 말하는 사회적 책임은 ‘발레 대중화’다. 모든 사람이 발레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첫 단추는 노숙인이었다. 2010년부터다.

 “뉴욕에서부터 노숙인을 봐왔어요. 하루아침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에요. 마침 그 해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 한국판이 창간됐어요. 그 분들을 위해서 해보자, 마음이 움직였죠.”

 1주일에 한 번씩 노숙인을 모아놓고 무료 발레강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서로 눈도 못 맞췄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스트레칭으로 손끝에서 발끝까지 굳어져있던 근육을 자극하자 마음도 서서히 열렸다. 소속감이 생기면서 사회성이 자랐고, 자신감과 자립능력도 커졌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도 생겼다. 덕을 본 것은 노숙인 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아저씨들과 함께하면서 인생의 아픔, 외로움, 새로운 희망에 대한 단서를 얻었어요. 2011년 초연한 ‘솔로이스트’란 단막 작품은 그런 과정을 통해 나왔습니다.”

 2011년부터 그는 노숙인을 서울발레시어터 단원과 함께 무대에 세운다. 매년 12월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1막 파티 장면에 노숙인 발레리노가 6명씩 등장한다. 올해도 12월 27, 28일 경기도 수원SK아트리움 무대에 출연한다.

 그는 이렇게 발레가 소통의 도구가 되는 경험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미혼모 발레교실, 부부 발레교실 등을 진행했고, 지난해부터는 장애·비장애 어린이들의 연합 발레단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의 교육을 맡고 있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의 효과가 참 큽니다. ‘터치’나 ‘허그’, 모두 신뢰가 없으면 하기 힘든 동작이에요. 서로 만지고 안아주면서 사람이 변화되고 사회가 바뀌지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다문화 가정·북한이탈주민 등 발레교육이 필요한 곳이 그의 눈에 계속 들어온다.

 “나는 발레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그걸로 책임을 다하고 싶어요.”


◆제임스 전=1959년 서울 출생. 12살 때 미국 이민. 스티브 잡스의 모교인 홈스테드 고교 졸업 후 줄리아드 예술대학에서 발레를 배웠다. 모리스베자르발레단·플로리다발레단을 거쳐 87년 귀국, 유니버설발레단·국립발레단에서 주역무용수로 활동했다. 95년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2003년부터 한국체육대 생활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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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1-11 15: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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