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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초토화, 현실로 닥친다 - 기존 규제 뛰어넘는 ‘산지관광특구법’ 추진
  • 기사등록 2015-05-19 1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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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울산광역시당 자연공원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렸다.경남 ‘환경부 케이블카 지침’ 대놓고 무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금 어떠한 형태의 선거에서도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케이블카가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성이 있든 없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 욕심과 지역개발업자들의 이해가 결합해 한 번 파괴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자연환경을 볼모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2014년 문화관광체육부 발표에 따르면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곳은 모두 15곳. 이처럼 각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케이블카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규모 규제가 풀리면서부터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 속에 난개발로 인한 국립공원 파괴를 막을 장치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 가속화

지난 2004년 만들어진 ‘자연공원 내 삭도 설치 검토 및 운영 지침’은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고 곳곳에 방어 장치를 만들어 무분별한 케이블카 추진을 막았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로프웨이협의체’가 구성되고 2010년에는 공원자연보존지구에 더 긴 케이블카와 더 높은 정류장을 짓도록 하는 내용의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다른 부서도 아닌 환경부에 의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산악형 자연공원 어디라도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케이블카 궤도 길이를 5㎞로 늘렸으며 정류장 높이 역시 9m에서 15m로 올렸다.

보전이 최우선가치인 공원자연보존지구에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법을 개정한 사례는 자연공원을 도입한 이래 처음이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산지관광특구와 케이블카 사업’ 토론회에서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협동사무처장은 “경제개발시대에도 없던 일을 이명박 정부가 해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케이블카 규제가 풀리면서 지리산 4곳, 설악산 1곳, 월출산 1곳, 한려해상 1곳이 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했고 2012년 국립공원위원회는 사천시가 신청한 해상형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 외에 6곳을 모두 부결했다.

당시 환경부는 각 지자체들의 사업계획이 가이드라인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는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부정류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어야 하며 생태경관보전지역이나 천연보호구역 등 다양한 보호지역을 피해야 하지만 지자체들의 계획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고 수익성도 없었다.

국립공원 제도가 처음 시작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한 곳도 없다.

‘케이블카=표, 절대 포기 못 해!’

그러나 정치인들은 ‘표’를 얻을 확실한 하드웨어 사업인 케이블카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부결 이후 양양군은 4개월 만에 자연환경영향검토를 했다며 사업계획서를 다시 제출했지만 또 부결됐다.

양양군이 계획했던 지역은 설악산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개방되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의 최대 서식지였다.

그럼에도 양양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4월 세 번째로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위한 신청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양양군은 새로운 노선이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환경단체들이 무인카메라 등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양양군의 조사 결과보다 훨씬 많은 산양의 서식 흔적이 발견됐다. 산양의 이동성을 고려한다면 양양군이 내세운 ‘주 서식지’ 논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양양군은 ‘등산객의 상도 하행 탑승 허용’을 계획에 포함시켰다. 걸어서 올라간 사람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환경부가 내세운 가이드라인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가이드라인을 위반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케이블카 사업 대상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시민단체가 대신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써먹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경남, 환경부 지침 대놓고 어겨

2008년 환경부가 가이드라인을 작성한 후 산악형 자연공원 중 유일하게 허가됐으며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도립공원 얼음골 케이블카의 경우 개장 1년 만에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자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공식적’으로 위반했다.

경상남도는 2014년 11월 도립공원위원회를 소집해 ‘얼음골케이블카 상부승강장과 기존 등산로 연결 차단이 행정규제에 해당한다는 안전행정부의 의견 때문’이라며 차단됐던 등산로 개방을 결정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이 환경부 가이드라인 위반을 문제 삼아 감사원 감사청구를 했지만 감사원은 “자연공원법이 아닌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존 등산로 차단을 명한 것이 위법하다”며 감사청구를 기각했다.

환경부가 케이블카 규제를 풀면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겠다며 안전장치로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안전행정부와 감사원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실제로 얼음골 케이블카 사례에 자극 받은 울주군은 가지산도립공원에서 불과 6㎞ 떨어진 신불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신불산은 예측 불가능한 돌풍이 부는 곳으로 소방헬기도 우회하는 위험한 곳이며, 우리나라 정맥 중 생태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는 낙동정맥의 중심이다.

그럼에도 울주군은 이곳에 상부종점을 조성할 계획인데, 이는 극상림의 생태계 및 산림생태축 훼손 문제 등으로 인해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위배하는 것이다.

특별법으로 기존 규제 무력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케이블카 관련 규제는 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완화됐다.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산지관광 특구제도를 도입해 산악호텔 등의 규제를 완화하고 설악산 등 유명 산지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산지관광특구로 지정되면 특별법처럼 기존의 산지관리법, 산림보호법, 자연공원법 등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개발이 가능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리산 백무동에서 장터목, 중산리를 연결하는 10㎞ 길이의 초장거리 노선을 제안했다. 홍 지사의 이러한 계획은 ‘산지관광특구법만 통과되면 환경부 가이드라인을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환경부 정석철 사무관은 “지리산 케이블카를 신청한 4개 지자체가 협의해서 조정안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조정이 안 되고 있다”며 “경남도지사가 제안한 케이블카 노선은 생태축 분할 등 문제가 있어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규모 자연환경이 파괴될 위험이 대단히 높은 정책을 수립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산지관광특구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무역투자진흥회의 구성원은 오로지 정부 관계자와 경제계 인사다.

녹색법률센터의 배영근 변호사는 “무역투자 진흥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환경을 포함한 국토, 해양, 교육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논의하면서, 법률적 근거도 없이 경제계 입장만 받아들여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꾸는 절름발이의 매우 위험한 거버넌스”라고 지적했다.

‘절름발이 위험한 거버넌스’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은 이미 무력화됐다. 게다가 산지관광특구제가 시행되면 개발사업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어진다. 경남의 사례처럼 초장거리 케이블카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한 난개발이 횡행하면서 자연공원이 황폐화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서울대학교 윤여창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환경부 훈령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를 법제화해서 지자체가 마음데로 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주옥 사무처장은 “산지관광특구법이란 것이 자연공원법 등을 뛰어넘은 무소불위의 법으로 탄생한다면 그날은 우리나라 지도에서 국립공원, 보호지역이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이다. 아울러 환경부도 사라져야할 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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