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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은 제72회 식목일이다. 식목일은 국민식수(國民植樹)에 의한 애림 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제정된 날로서 나무를 심는 날이다. 이러한 국민식수 애림 운동은 1946년 제1회 식목일부터 국가시책으로 추진하여 오늘날 우리나라는 벌거숭이산이 없어지고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식목일의 유래는 미국의 네브래스카주에서 산림이 헐벗은 것을 본 개척민이 산림녹화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매년 주민 전체가 하루를 식수를 위한 봉사 일로 정한 것이 시초이다.

1872년 4월 10일 제1회 식목행사를 하여지고 이것이 그 후 미국 각주 및 캐나다에 보급되었고, 나아가 전 세계 각국에서 이를 본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4월 5일 식목일 유래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 민족이 일본의 통치로부터 해방되면서 헐벗은 우리 강토에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절실한 요망이 국민의 의사로 집약되었다. 그리하여 광복된 다음 해인 1946년 정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날(문무왕 17년 2월 25일: 양력 4월 5일)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양력 4월 5일)을 기원으로 해서 식목일을 정했다.

이날은 청명과 한식날이 겹치거나 전후하여 있으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의 산이나 들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식목일은 민족사적으로는 통일 성업을 완수하고 임금이 몸소 친 경의 성전을 거행한 날로서 농림사적으로도 매우 뜻있는 날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도 나무 심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제1회 식목일 행사는 1946년 4월 5일에 서울 사직공원에서 서울시 주관으로 했었다. 식목일 행사는 산림청에서 주관하여서 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전 국민이 심고 가꾸는 국민식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식목일은 1946년 제1회로 시작되어 1949년 4월 4일, 대통령령 124호로 4월 5일을 식목일로 공포했고,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그 뒤 1960년에 3월 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면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으나 이듬해에 식목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하여 식목일이 공휴일로 부활하여 식목행사를 했다. 그러나2006년에 공휴일은 폐지되고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두 차례에 걸쳐 산림이 크게 훼손당한 일이 있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한 뒤에 국가 질서가 바로 잡히지 않은 틈을 타서 벌채허가를 남발했고, 전국 방방곡곡에 즐비하게 서 있던 나무들이 훼손을 당해 장작과 숯으로 팔려나갔다.

그리고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 중에 또 한 번 소중한 산림이 마구잡이로 훼손당했다. 다행히 근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녹화정책이 수립되고 연료가 무연탄과 천연가스와 석유로 바뀌어 가면서 산림이 보호되기 시작해 이제는 녹화정책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함부로 산림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유감이다. 부주의로 말미암은 산불 등으로 해마다 소실되는 수목도 적지 않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수종개량사업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도 중요 하지만 푸른 숲 마을 가꾸기도 중요하므로 건물 주위에 심어놓은 나무나 도로 주변과 공원에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가도록 가꾸는 정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정성은 일 년 내내 국민의 가슴속에 간직돼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것은 나의 꿈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나의 꿈이 이뤄짐과 같이 나무는 무성히 자라 재목이 되고 유실수는 열매를 맺어 가꾸는 자에게 보답하게 된다. 우리가 모두 나무를 심고 가꾸는 보람된 일에 앞장을 섰으면 한다. 나무를 심는 것은 연중 할 수 있으나 가장 적기가 3~4월이며 적지적수(適地適樹) 원칙에 따라 수종과 장소를 선택해 심어야 한다. 심는 나무의 수종은 꽃피고 열매 맺는 유실수를 심어서 가꾸는 보람을 느꼈으면 한다. 우리는 제72회 식목일을 전후해서 한 그루 이상의 꿈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보람 있는 일을 실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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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로본 우리나라 역사적 유래>
식목일은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한날 [문무왕 17년 2월 25일 (양력 4월 5일)이며, 조선 성종대왕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동대문밖 선농단에 친사하고 적전을 친경한날[성종 24년 3월 10일(양력 4월 5일)]로서 청명과 한식날이 이날과 겹치거나 전후하여 있으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의 산이나 들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식목일은 민족사적으로는 통일 성업을 완수하고 임금이 몸소 친경의 성전을 거행한 날로서 농림사적으로도 매우 뜻있는 날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도 나무심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식목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식목일 연표]
1910년
조선 순종께서 친경제 거행시 친식한 것이 유래

1911년
일제치하에서는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함

1946년
광복이후 4월5일 식목일로 제정하고 기념행사는 서울시에서 주관함

1970년
식목일 기념행사를 산림청에서 주관함

1974년
산림청 주관하에 각 중앙부처 단위로 식목행사를 실시함


[4월 5일 식목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산림청은 1975년 제30회 식목일부터 시행한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의 ‘국민 나무 심기 기간’ 을 올해부터 3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두 달 동안으로 늘리는 것과 함께 전국 각 지역별로 세분화했다고해요.
그러나 식목일은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종전대로 4월 5일이다.
산림청이 정한 지역별 식목 기간은
△남부지역(제주•광주•부산•울산•전남•경남) 3월 1일부터 4월 10일

△중부지역(대전•충남•충북•전북•경북•대구) 3월 10일부터 4월 20일

△북부 지역(서울•인천•경기•강원•북한) 3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산림청은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2∼3월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2∼3도 높아 나무 심는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4월 5일 식목일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일본 식민지로로부터 광복된 다음 해인 1946년 정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날(문무왕 17년 2월 25일)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양력 4월 5일)을 기원으로 해서 식목일을 정했다.
따라서 식목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농림 사상이 깃든 매우 뜻깊은 날이다.
또 계절적으로도 나무를 심는 기간이어서 이날을 식목일로 정하게 됐다.

제1회 식목일 행사는 서울 사직공원에서 있었다(1946. 4. 5). 신라는 태종 무열왕 7년에 3국을 통일했다. 분열된 우리 민족을 처음으로 통일한 해였다. 그러나 신라는 독자적인 힘으로 3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당나라의 힘을 빌려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래서 당나라는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옛 땅에는 안동도호부와 9도독정을 설치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통치했다. 뿐만 아니라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라 이름 짓고 지배하려 했다.
이에 신라 국민은 문무왕 10년부터 8년간 당나라와 싸웠다. 그리하여 문무왕 17년(서기 677년) 2월 25일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3국 통일을 이룩했다. 문무왕 17년 2월 2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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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4-05 17: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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