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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길 작가

            

어느 토요일 여느 때처럼 좀 늦게까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식탁 위에 놓인 A4 용지에 적힌 글을 좀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무언데 그러느냐?’라고 하면서 봤더니 그동안 좀 뜸했던 아래층 아주머니가 또 올라와서 우리 집 대문에 붙여두고 간 글이었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침에 청소를 하시는 것 같던데, 아래층의 소음을 생각하셔서 청소 시간을 좀 늦추시든지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필요하다면 자기가 소음방지테이프를 구입해 줄 수도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좀 일찍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내 담당인 집 청소를 아침 8시경에 바쁘게 하고 나갔는데 거기에 대한 아래층 아주머니의 친절한(?) 지적이었다. 글을 읽는 순간 그동안 참아왔던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래층에 언제 이사를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몇 주 전부터 처음에는 경비 아저씨가 몇 차례 인터폰으로 아래층의 항의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조금 더 지나서는 직접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히면서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치 않는 사람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찾아오는 타이밍 또한 절묘했다. 한 번은 가족 중에 누가 생일이라 축하를 위해서 따로 살고 있는 큰아들 내외가 손자까지 데리고 와서 온 가족이 모여 축하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내가 막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기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둘째 아들이 문을 열고 나가서 어린 조카가 와서 소음을 낸 모양인데 주의를 시키겠다고 설명을 하는 동안 생일 축하 분위기는 많이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몇 차례의 간격을 두고 올라왔기 때문에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가족들로서는 가정이 우리 가족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원치 않는 타인에게 오픈되어 감시·감독당하는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래층에서 소음이 들렸으니까 올라왔겠고, 그래서 ‘미안하다.’ ‘조심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20년 넘게 이 집에 살면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몇 번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소음으로 인해 아래층의 불평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층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무던한 분들이라 그동안 참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적절한 추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꼭 같은 구조인 우리집 위층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더구나 우리 집 위층에 사시는 분들이 너무나 조용한 분들이라 그동안 우리가 소음 없는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했다는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아래층에서 몇 번 소음에 대해 어필하기 위해 다녀간 뒤로, 우리가 너무 둔감해서 위층에서 나는 소음을 못 듣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몇 차례 위층 소음을 들어보려고 귀 기울여 보았지만,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 번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집중해서 귀 기울이고 들었을 때 겨우 작은 소리가 들리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제법 소음을 내고 있었는데 아래층에서 참아준 것이라면 정말 지금이라도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고, 위층에서 우리와 달리 너무나 조용하게 살아줘서 우리가 소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 경우라면 윗집에도 그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각설하고, 문제는 이렇게 대문에 榜까지 붙이고 갔는데 이제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우리가 조심한다고 해도 조금만 소리가 들려도 아래층에서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우리 가족의 평온을 깨트릴 것이 예상된다면, 그 침입자(?)를 계속 약하게 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보복을 한다는 차원은 아니지만 우리도 글을 써서 우리의 입장을 아래층에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PC 워드로 쳐서 아래층 대문에 붙여두었다. 밝혀두지만 이런 방법을 최선의 방법으로 확신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아래층과 원만한 해결책이 없을까?’, 나름 고민하면서 취한 방법이었다.


<안녕하세요? 귀하께서 성의 있게 저희 집 대문에 붙여두고 가신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우리 집 아래층에 ‘참 독특한 분이 이사 오셨구나!’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strong>


독특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집에 2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아래층에서 소음 때문에 올라온다거나, 대문에 방을 붙이거나 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나 정다운 이웃으로 잘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귀하께서 소음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귀하께서 소음에 대해 어필하러 불쑥불쑥 찾아오시는 바람에 우리는 가족생일축하 케이크를 자르거나 기도하다가 중단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손자를 데리고 온 아들들 내외가 귀하의 방문으로 머쓱해지기도 하는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귀하의 잦은 방문과 오늘 같이 대문에 붙여둔 榜을 겪으면서 지금까지는 먼 남의 일로 여겨졌던 층간소음 문제와 그로 인한 이웃 간에 있을 수 없는 극한 다툼의 언론 기사가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겪고 있는 층간소음 문제의 해결책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희 때문에 고통받고 계신다는 1101호 님! 우리 속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웃은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귀하께서 우리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 245동은 이사 오면 옛 풍습대로 떡을 돌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모르는 아이들까지 반갑게 인사하는 그런 이웃이 살아가는 아파트입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앞집 아주머니께서 가끔 오는 우리 손자가 귀엽다고 옷 선물까지 주셨다는 말을 듣고, 이런 이웃 간에 따뜻한 정이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위층의 경미한 소음을 느낄 때도 있지만 아파트라는, 소위 공동주택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아무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불쑥불쑥 찾아와서 초인종을 눌러서 남의 사생활을 방해하는 일이나 불쾌한 방을 붙이는 일 등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귀하께서 공동주택에서 살아가는 기본적 예의와 이웃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  정도는 참아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정 참으시기 어려우면 법적으로 정당하게 다퉈주신다면 기꺼이 법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입니다.


법 운운한 것은 저의 진심은 아닙니다. 귀하께서 생각을 다시 해보셔서 지금까지 245동 다수의 이웃이 그래 왔듯, 도시에 살지만 시골 같은 인심으로, 귀하께서도 정다운 이웃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귀하의 예민한 신경이 2015년 새해엔 잘 치료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내용으로 쓴 글을 아래층 현관문에 토요일 야밤에 불여두고 주일 아침에 교회를 가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한 행동이 믿는 사람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시, 취소할 수도 없어서 은혜가 되지 않는 찜찜한 마음으로 교회를 간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榜을 붙인 결과를 말씀드리면, 그날 이후 아래층에서는 너무나 조용했고,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아래층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아내를 보고 밝은 미소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나도 그날의 행동에 상당히 켕기는 바가 있어서 그날 이후 집안의 모든 의자에 소음방지 신발(?)을 신겼고, 청소 시간대도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아래층을 고려하여 청소하는 등 조심하고 있다. 


그 이후 층간소음 문제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사건(?)이 엉뚱한 곳에서 하나 있었다. 아랫집이 한 것과 꼭 같이 榜을 붙인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 가족 단톡방에 위의 내가 쓴 글을 그대로 올렸는데, 그 글을 보고 내 글 밑에 올린 - 올해 교회에서 새로 서리집사가 된 30대인 큰 아들의 카톡 글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신경 많이 쓰이시겠지만, 잔뜩 화가 나서 올라오더라도 홀대하지 마시고 오히려 더 따뜻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서리집사 안 o o” (2015. 3. 12.)


                  (안무길)

               수필등단 작가

               오륜교회 장로
               전)한일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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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11 00: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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