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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와 메갈의 혐오가 다르다 - 일베의 여혐은 여성 차별로 규제해야… 메갈의 남혐은 무방하다는 인식은 곤란
  • 기사등록 2016-08-30 15: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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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 (중략) 불신과 불타협,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들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도 가중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진단한 ‘2016년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이를 관통하는 신조어가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뜻하는 ‘헬조선’이다. 헬조선 신드롬이 사회 혼란과 공동체 붕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박 대통령 혼자만의 인식은 아닌 것 같다. 지난 23, 24일 열린 언론중재위원회 정기세미나에서도 ‘사이버공론장에서의 혐오와 모욕표현 이대로 괜찮은가’란 도전적 주제가 다뤄졌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 논란은 2013년 일베저장소(일베)가 여성, 외국인, 호남 등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 공격한 데서 본격화됐고 2014년 국립국어원 신어(新語)로 극혐오(극혐)가 선정되기도 했다. 일베의 여성혐오(여혐)에 맞서 남성혐오(남혐)의 기치를 내건 메갈리아(메갈)와 워마드가 출현하면서 2016년 양성 간 혐오 대결은 위험 수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논의를 종합하면 혐오표현(hate speech)은 소수자(약자)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의 극단적 표출이자 차별의 문제다. 혐오에 머물지 않고 약자를 표적집단 삼아 공격하고 청중을 선동하는 증오선동(incitement to hatred)은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혐오표현 중 증오선동에 한해 차별로 규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및 이로 인한 위축효과를 감안해 증오선동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법제화하고 이를 어기면 불법화하는 상징적 선언 조항을 두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상징적 선언이면 행정규제, 자율규제, 분쟁조정 등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혐을 약자차별로 보고 제재를 모색하는 주장은 평소 숙고하지 못했던 터라 신선했지만 최근 남녀 간 극혐 대결 사례들을 살펴보니 그리 간단치 않았다. 첫째, 일베와 달리 메갈과 워마드는 증오선동을 해도 정당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남성은 약자집단이 아니기에 일베의 여혐주의는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엔 일견 수긍이 간다. 한데 예수를 성적(性的)으로, 안중근·윤봉길 의사를 나치주의자로 능멸하고 태극기 훼손, 여교사의 소아성애 등을 정당화하는 취지의 극혐주의를 선량한 여성들과 크리스천들이 과연 용인할까.

둘째, 우리 사회에서 누가 약자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차별금지의 선결과제라는 의견이 오갔는데,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다. 언론중재위 시정권고위원회는 지난 7월 중순 시정권고 심의기준에 차별금지 조항을 추가했다. 차별금지 대상은 인종, 종교, 성별, 육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 등 5가지로 한정했다. 중재위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차별금지 대상을 5가지로 국한한 배경과 교계에서 예민한 ‘동성애’가 제외된 이유를 따지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에 놀란 중재위 측은 “신문윤리강령과 영국 등 해외사례를 차용했다”면서 “그야말로 선언적 심의기준이지 강제력은 없다”고 답해 더 이상의 예봉을 피해갔다.

갑론을박을 지켜보면서 중재위의 취지가 선의에서 비롯됐고 권고사항에 불과할지라도 외국사례 차용으로 뚝딱 해치운 것처럼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다양한 계층의 권리와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합의 도출이 요구되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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