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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후쿠시마, ‘원전’을 논하다 - 한국·일본·대만 청년 활동가들 국회서 토론
  • 기사등록 2015-01-21 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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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과 정의당 김제남 의원 개최로 한국, 일본, 대만 탈핵운동 활동가 간담회가안전성·경제성 신화 깨졌어도 현실론 여전

지난 2009년 발생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바꿨다. 동아시아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체르노빌 사고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원전의 안전신화가 깨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체르노빌 방사능 피해가 유럽으로 번졌듯이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공포를 체감하면서 한국인들 역시 원전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결정적인 계기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로 대변되는 부품 비리 사건이다. 2012년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불량 부품이 원자력발전소에 대량 공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그로부터 3년도 지나지 않아 원전 핵심 설비가 극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원전 7곳에 설치됐다는 내부 고발이 터져 나오면서 구조적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2014년 12월에는 신고리3호기 보조건물 기기배수탱크 밸브룸에서 질소배기밸브에서 질소가스가 누설되면서 3명의 안전관리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고 원인인 질소배기밸브를 공급한 업체는 두 차례나 원전비리로 적발된 업체였지만 또 공급업체 자격을 획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원전 비리에 대한 개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 61% ‘원전 줄이거나 동결해야’

이처럼 계속된 원전 비리와 노후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원전을 줄이거나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한 전기요금을 부담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65.6%가 동의했다.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은 85.9%였으며 75.3%가 ‘한국에서도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걱정했다.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 월성1호기의 가동중단 의견도 60.4%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해 1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전 비중을 41%에서 29%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는 11%의 비중을 유지하기로 했다.

얼핏 원전이 줄어든 것 같지만 사실은 미래에 전력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현재 23개인 원전을 4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환경·시민단체들은 원전 추가건설 중단 및 노후 원전 폐쇄를 주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월성1호기 수명 연장 여부를 놓고 회의를 개최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말 터진 원전 사이버 해킹 사건 때문에 무리한 수명 연장이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원전 재가동하면 보조금

원전에 대한 사고 당사자인 일본이 가장 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전 사고는 잊히고 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여파로 일본의 모든 원전은 가동 중단 상태지만 최근 아베 내각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 심사를 통과한 원전은 재가동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베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하는 지자체에 주는 교부금을 신설하기 위해 50억엔을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일본·대만 청년 탈핵운동가 초청 간담회’에서 일본 대표로 참가한 나가시마 카에데 씨는 “원전 사고가 발생했지만 어떠한 어른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라며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란 어린이와 청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사이마타현의 독쿄대학교(獨協大学)에 재학 중인 나가시마 카에데씨는 원전 사고 당시 후쿠시마에 거주하고 있었던 사고 당사자다. 그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고 믿었다”라며 “생명과 안전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일본에서는 매주 국회 앞에서 반핵 집회를 열고 있으며 국회의원들이 직접 앞장 서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만은 4번째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99년 공사에 착공해 98%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운동 때문이다.

대만 반핵 시위에 22만명 거리로

대만에서 실시된 갖가지 여론조사에서는 성인 70% 이상이 신규 원전 프로젝트의 중단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22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대집회가 시내에서 열릴 정도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크다.

시민단체들은 “대만이 환태평양 지진대에 있어 후쿠시마처럼 대형 원전 사고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건설 중인 원전이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 원전과 같은 모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신감을 키웠다.

이에 굴복한 집권 국민당은 국민투표가 시행되기 전에는 원전 건설의 주공정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신규 원전 가동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미 3300억 대만달러(약 11조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건설비가 투입됐기 때문이다.

대만 원전의 특징은 주거지와 매우 가깝다는 점이다. 제1·2 원전은 모두 신 베이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타이베이 시내 중심에서 고작 30㎞ 거리에 있다. 건설 중인 제4 원전 역시 40㎞ 거리에 있으며 수킬로미터 거리에 도시와 마을, 유명 관광지가 있어 사고가 나면 심각한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한국의 고리 원전 역시 반경 30㎞ 이내에 342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만약 후쿠시마 같은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부산, 경남 지역은 거의 폐허가 된다. 원전 안전국이라고 자부하던 일본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도 수백톤의 오염 물질을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대만 대표로 참석한 수은은(Hsu-En-En)씨는 “대만 원전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사고 시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라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시민의 힘으로 원전을 멈춰 세웠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반핵운동은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국을 돌면서 영화상영, 강좌, 사진전, 깃발 달기, 스티커·배지 배포 등을 통하 자연스럽게 시민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라며 “대만 정부는 원전 사고를 은폐하기 급급했고 이는 시민들의 반핵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질서 있는 후퇴 필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신화는 깨졌다. 경제성 신화 역시 깨지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원자력은 안전하지도, 안정적이지도, 값싸지도 않아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라며 “독일처럼 신규 원전 포기 등 ‘질서 있는 후퇴’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원전은 안전규제, 사고위험비용, 송전선로 갈등 등 외부 비용으로 인해 경제성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국제적으로도 원전은 경제성이 없어서 사양 산업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에서 원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각국 정부는 경제성을 내세워 원전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연장가동을 전제로 월성1호기에 미리 5600억원의 돈을 투입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가동하면 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사실은 애써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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